군대시절 나에게 부여된 임무는 계산이었다. 크~ 초등학교 일학년 때 구구단도 잘 못외었던 사람에게 계산 임무를 맡기다니 바보들 아냐? ㅋㅋㅋ
어떻든 나는 그 보직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산수 계산은 안좋아 했지만, 내가 직접 사격 명령을 내리는 것이므로 비교적 내 적성에 맞았다. 나한테 이런 보직을 준걸 보면 내가 누구에게 지시받는거 안좋아하는 스타일이란거 군대에서도 파악을 했나보다.^^
그런데 그때 우리 부대에는 계산용 컴퓨터가 보급이 안되서 모든 계산을 수작업으로 해야만 했다. 사거리나 각도를 계산하는 것은 입체적인 계산이라 일일이 도판에 좌표를 찍어서 그림을 그린후 거기서 답을 도출해야 했다.
나의 귀차니즘에 발동이 걸렸다. '왜 귀찮게 일일히 수작업으로 계산해야 하지?'
귀차니즘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할 때쯤 나의 조수가 들어왔는데,그는 명문대 자연계열 석사 출신이었다. 나는 두자리숫자도 일일히 계산기로 계산했는데 그친구는 네자리 숫자까지 암산으로 푸는 친구였다.
2548 곱하기 6584 = ?
5648 곱하기 5687 = ?
5648 곱하기 6594 = ?
신기해서 이렇게 임의로 막 숫자를 불러줘 봤는데 그친구는 컴퓨터처럼 암산으로 신속하게 답을 내놓았다.
"음...역시 명문대 자연계열 석사 출신이라 다르군...."
원래 자연계열은 수학좀 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이친구는 그중에서도 좀더 계산을 잘하는 측에 끼는 인물이었다.
다만,그가 계산을 잘하는 인물이긴 했지만,나의 귀차니즘을 해소시켜줄 정도는 아니었다. 곱하기 덧셈 뺄셈같은 단순 계산은 빨랐지만,사거리와 각도와 같은 입체적인 계산에 있어서는 컴퓨터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계산속도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유능한 재원이 조수로 들어왔는데,업무 성과에는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결국 나는 나의 귀챠니즘(번거로움을 매우 싫어함)을 해소하기 위해 수학프로그램을 직접 계발할 결심을 하게된다.
그 결심이 있은후 얼마후 휴가를 받았는데,휴가를 나갔다가 복귀할 때 만원짜리 공학도용 계산기를 하나 사들고 온다.
"잠깐 나좀 볼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상기된 얼굴로 부르자 눈치빠른 명문대 자연계열 석사출신의 조수가 눈치 빠르게 댓구한다.
"내가 말이지 휴가 갔다 오면서 만원짜리 공학도용 계산기를 사왔거든? 이 계산기를 이용해서 우리가 사거리와 각도를 계산하는 수학프로그램을 계발하는거야 어때 멋지지않아?"
"에이~ 그런 싸구려 계산기로 어떻게 수학 프로그램을 계발합니까...."
"물론 이 계산기가 싸구려라는건 맞어,그런데 이건 그냥 싸구려 계산기가 아니라 공학도용 이라고 공학도용! 공학도 애들이 어떤 애들이야? 숫자에 목숨거는 애들 아냐? 그런 애들이 쓰는 계산긴데 기본적인 수학공식이 입력 안되있겠냐구~ 우리는 입력된 공식을 응용해서 답을 도출하는 공식만 만들어내면 되는 거라구 어때 쉽지않아?"
"에이~ 그래도 그런 싸구려 계산기로 수학프로그램을 계발한다는건 어려울거 같은데요~"
음....이래서 민주주의가 안좋다니까~ 민주적으로 협조를 요청하면 "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말야~ 나는 속으로 민주주의의 비효율성과 그명문대 자연계열 석사출신 조수의 멍청함에 대해서 잠깐동안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것을 표현하진 않았다. ^^
"좋아 그러면 사거리와 각도를 구하는 것중에 그나마 사거리 계산이 비교적 덜 입체적이라서 쉬운 편이니까 내가 사거리 계산하는 공식을 도출해내면 각도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는 동참하겠어?"
"좋습니다. 만약 사거리 계산하는 공식을 도출해 내시면 저도 한번 동참해보겠습니다."
나는 바로 사거리 계산하는 프로그램 계발에 착수했다.프로그램을 계발한다하니 표현이 거창한데,사실은 그공학도용 계산기에 입력되어 있는 수학공식들을 응용하는 공식만 산출해내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한 일이란 열심히 사용설명서를 읽어보는것 뿐이었다.
사용설명서에는 공학도용 계산기에 입력되어 있는 여러가지 공식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응용해서 사거리를 계산하는 공식을 도출해낸다.하루만에...
"잠깐 나좀 볼까?"
"어? 해내신 겁니까?"
"흐흐흐...어때 이젠 각도 계산하는 프로그램도 계발해볼까?"
"좋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이틀만에 각도 계산하는 프로그램까지 계발해 버렸다. 수작업으로 계산할때에 비해서 현저하게 계산속도가 빨랐고 편했다.나의 귀챠니즘이 해소되는 순간 이었다.
수학에 빠삭한 분들이 보면 우수운 얘기일지도 모른다.그거 뭐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이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대표이사 이전에 수많은 계산 잘하는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모두가 수작업으로 계산을 했다.명문대 자연계열 석사 출신도 역시 수작업으로 계산을 했으며 그들의 계산은 항상 컴퓨터보다 느렸다.
아이들을 단순히 숫자계산 잘하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그 숫자계산 잘하는 사람에게 비젼을 제시하고 영감을 불어넣어서 수학프로그램을 계발해내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여러분들의 선택에 아이들의 운명이 바뀐다.
아이들에겐 스스로 고차원적인 사색을 할 능력이 있다.아이들에겐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시간이 필요하며 독서의 시간이 필요하고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표이사가 걸어온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대에 체질이 약해지다. (0) | 2012.07.30 |
---|---|
언약법 (0) | 2012.04.12 |
그남자가 강남 갑부에게 외동딸을 소개받은 사연 (0) | 2011.01.28 |
아홉살에 대체에너지를 계발하다 (0) | 2011.01.20 |
아홉살짜리 꼬마 철학자 (0) | 2011.01.13 |